informative text

살바도르 달리, 「밀레의 <만종>에 대한 편집증적 비평 연구」

살바도르 달리, 「밀레의 <만종>에 대한 편집증적 비평 연구」

편집증은 항상 ‘예증’이 되는 것으로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는 진정한 ‘문자 그대로의 예증’, 다시 말해서 ‘광란 상태의 해설적 예증’이 된다.(......) 내가 보기에 일반적인 의미의 로트레아몽, 특히 『말도로르의 노래』에서의 로트레아몽을 가장 ‘문자 그대로’, 그리고 정신 나간 방식으로, 그 어떤 이미지보다도 가장 적절하게 재현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비극적인 카니발리즘의 화가, 달콤하고 부드러운 최상의 살과 선구적으로 조우했던 한 화가가 거의 70년 전에 그렸던 작품이다. 바로 장-프랑수아 밀레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독히도 잘못 이해되고 있는 화가. 그리고 ‘수술대 위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에 대해서, 그것이 알려지지 않은 만큼이나 훌륭한 회화적 등가물이 될 만한 것이 바로 밀레의 유명한 <만종>이다. (......)

<만종>은 움직일 수 없는 현존을 재현하고 있는, 내가 알기로는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그림이다. 고독한 황혼녘 죽음을 암시하는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두 존재의 만남과 오랜 기다림. 이 그림에서 이 고독한 황혼녘 죽음을 암시하는 배경은 시의 텍스트에서 수술대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이유는 지평선에서는 생명이 꺼져 가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언제나 인류를 의미해 왔던 경작지이자 살아 있는 실체적 살에 건초 쇠스랑까지 꽂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쇠스랑이 생산력에 대한 왕성한 욕망을 가지고, 정교한 메스가 절개하는 것과도 같은 특유한 자세로 스스로 박혀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외과적 절개는 여러 가지 분석적 핑계를 내세워 각각의 시체에 대한 해부를 통해서 비옥한 합성물, 죽음이란 영양 많은 열매를 은밀히 탐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모든 시기마다 존재하는 경작지의 불변의 이중성이 파생된다. (......)

궁극적으로는 이 이중성이 우리로 하여금 경작지를, 특히 점점 어두워지는 어스름 환경에 있는 경작지를 준비가 잘된 수술대로 여기도록 만든다. 그것은 모든 수술대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장비를 갖춘 수술대로서, 이것이 공급하는 것은 가장 완벽하고 식욕을 돋우는 시체, 히틀러를 신봉하는 유모들의 부드러운 격세유전의 어깨살 옆에서 꾸게 되는 자양분 많은 꿈들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시체, 섬세하고 지극히 가벼운 송로들로 속이 채워진 시체, 탐욕스럽게 우글거리는 개미들이 그것이 썩지 않도록 자극적인 소금간이 되어 주는 시체이다. 개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훌륭하고 그 이름값을 하는 진짜 ‘매장되지 않은 부패물’을 자동적으로 암시한다. 만약, 우리가 말한 것처럼 ‘경작지’가 현존하는 가장 확실하고 적합한 수술대라면, 우산과 재봉틀은 <만종>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형상으로 대입시킬 수 있으며, 그 만남이 주는 온갖 불안과 수수께끼들은 예외 없이 (......) 이 두 인물의 진정한 성격에서 파생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두 객체로부터 주제의 전체적 발전이 이뤄지고, 만남과 기다림, 사전 작업의 잠재적인 비극이 파생되는 것이다. 우산, 즉 상징적 기능(명백하고도 잘 알려진 발기의 결과)을 가진 전형적인 초현실주의적 오브제는 <만종>에서는 다름 아닌 남자의 형상일 수밖에 없는데, 다시 한 번 기억을 되새겨 본다면, 그림 속의 그 남자는 발기한 자신의 상태를 감추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있지만, 창피스럽고 의심스러운 모자의 위치를 고려하면 오히려 그것이 강조되고 있을 뿐이다. 그와 마주선 재봉틀, 누구나 알아볼 만큼 심하게 특성화된 여성의 상징인 재봉틀은 심지어 더 나아가 자기 재봉틀 바늘의 치명적인 카니발리즘적 속성을 주장하기까지 한다. 재봉틀 바늘의 작용은 사마귀가 수컷을 ‘비우기’위해 행하는 섬세한 천공 작용 자체와 동일시된다. 다시 말해서 재봉틀 바늘의 작용은 우산을 힘없이 축 늘어진 박해의 피해자로 전환시키는 우산 비우기 작용이며, 사실상 모든 우산이 매우 흥분해서 가능한 한 빳빳하게 그 당당하고 호색적인 기능을 다한 뒤에 접혔을 때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만종>의 긴장한 인물들 뒤에서, 다시 말해서 재봉틀과 우산 뒤에서 이삭을 줍는 사람들은 무관심하게 관습적으로, 프라이된 계란(프라이팬 없는)과 잉크병, 숟가락, 그리고 이 번뜩이는 시간 동안 어스름 박명의 마지막 순간이 과시벽 환자에게 주는 온갖 은그릇들을 계속 주워 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음식을 상징하는 평균적인 예로 받아들여지는 날고기 커틀릿이 남자의 머리 위에 내려오자마자, 벌써 지평선 위로 나타나기 시작한 구름들이 갑자기 모이면서 나폴레옹 1세, <배고픈 자>의 실루엣을 만들게 된다.


움베르토 에코, 추의 역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