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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7 블로그?

 내가 블로그를 처음 개설하게 된 계기는 예전에 만나던 남자친구의 권유였다. 하루하루 일기와 관심사를 포스트로 남겨두면 타인과 생각을 공유하기가 쉽고 그 속에서 교감이 이루어질 수 있기에, 나라는 사람을 정리해둘 수 있는 하나의 블로그를 만드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당시엔 그렇게 진지한 제안도 아니었을 뿐더러 나도 블로그에 대한 선입견과 운영에 대한 부담감이 들어서 그의 말에 그저 웃어넘겼다. 하지만 그가 참고용으로 권해준 어느 영화평론가의 블로그를 본 이후로 생각이 바뀌어서 몰래 블로그를 개설하게 되었고, 헤어진 이후로도 꾸준히 블로그를 운영하며 남 모르는 지식과 사념의 보물상자(이자 쓰레기통)를 발견한 듯한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블로그'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네이버 블로그의 상업적 성격과 온라인을 통한 친목다지기적 성격이 여전히 부정적으로 느껴졌고, 티스토리로 이주하기 전 이용하던 egloos측에서 내가 올린 Conrad Roset의 일러스트를 '불건전한 포르노그래피'로 간주하여 제재하는 바람에 블로그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동시에 더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받고자 티스토리로 옮겨오면서 조금씩 전문적인 글을 게시하는 인터넷 글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학업을 진행하면서 내 지식의 밑바닥을 깨달았다는 것과 연속적인 상관관계를 맺기에 이것은 전혀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이 때 나는 여가시간마다 인터넷커뮤니티를 이용하며 '재미'라는 유희적 성격과 '유익함'이라는 교육적 성격을 가진 포스트만 골라 읽고 다녔는데, 이러한 글이 가장 많이 올라오는 곳이 바로 블로그였다. 영화를 비롯한 도서, 음악, 문화, 역사 등 다양한 비평과 메타비평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자 내가 아직 접하지 못한 혹은 관심있게 보지 않았던 다양한 주제들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조금씩 '유익한 블로그'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공부하는 동안 키워드 검색을 통해 만나온 블로그 중 나의 관심사와 잘 맞는 곳을 즐겨찾기해두고 자주 왕래하며 현재에 이르게 된다. 

 지금은 예전처럼 '모든' 블로그가 부정적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여전히 일부 상업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거나 특정 이해관계를 가지고 운영되는 블로그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주 구경하는 몇 블로그의 운영자들은 아무런 이해관계도 가지지 않고 단지 자기목적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이유에서만 글을 올리고 있는데, 개인적인 글이지만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독창적인 글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올리고 있기에 타 블로그와 큰 차이점이 있다. 그 중 한 블로그는 석박사과정 중에 있는 학구적인 인물로 수년에 걸쳐 양질의 글을 게시하고 있다. 이 블로그의 주제가 블로그 운영자의 학업적 연구주제와 전혀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연구주제가 아닌 개인적인 관심이자 취미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한) 소수문화에 대한 다양한 글을 올리는 데 일부는 사회적인 이슈에 포함되기도 하고 일부는 예술적인 영역에 속하기도 하며, 언제나 학계의 동향과 전문가의 논문 비평을 통해 자신의 글을 완성시키고 있다. 이런 전문성을 통해 이 블로그의 글은 사회적인 함의를 가질 뿐만 아니라 '출처가 분명한' 하나의 완성도 있는 논고로써 존재한다. 또한 약 10년에 걸친 기간동안 올린 글들의 수는 약 1000개에 달한다. 이렇게 양과 질을 함께 겸비한 블로그는 쉽게 찾기 힘든데 그 가치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 이 블로그의 주제가 아직 세계적으로 문화의 한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척되고 있는 소수문화인 바람에 이 블로그의 기반인 대형포털 측에서도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고 '일반 블로그'로 취급하고 있으며[각주:1] ,  해당 문화를 즐기는 구성원들이 대다수 10대-20대인 탓에 이 블로그 글의 전문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우연히 방문하게된 인터넷 이용자들은 주류 문화의 향유자로서 이 블로그의 소재를 폄하한다는 것이다. 문화에 대해 배우며 타자와의 소통의 중요성과 소수문화, 하위문화가 사회에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는 점을 익히 들어온 바 이러한 상황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블로그 외에 다른 블로그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일반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비상업성과 폐쇄성(타 블로그와 교류하지 않아 인터넷페이지로서의 접근성이 미약함을 의미한다.) 으로인해 이 블로그 역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블로그가 어떤 역할을 하는 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점차 정보시대에서 양질의 정보가 올바르게 분배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상품소비영역에 속하는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상식적인 수준의 생활정보는 풍족하지만, 민주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인터넷에서 하나의 개인이 작성한 문화비평이나 체계적인 논고과 같은 전문적인 지식에 속하는 글은 일반인에게 쉽게 닿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직접 전문적인 용어를 검색하는 것과 같은 선택적인 상황에서의 접근은 가능하지만 일상적인 궁금증을 가진 개인이 전문적인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징검다리의 역할까지는 못하고 있다. 반대로 소비자로서의 정보는 포화상태에 이르러 있으며 모든 정보가 소비로 귀결되는 역기능까지 발생하고 있다. 대형포털사이트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데이터화하여 공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나 하나의 기업이 불특정다수의 개인들에게 제공하는 정보는 일방적으며 어떠한 은폐된 함의를 가질 수 있다. 극단적으로 보자면 이것은 전통적인 대형미디어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방송통신을 매개로 일반 대중을 겨냥하여 정보를 살포하는 과거가 이제는 광대역통신망을 매개로 주체적 선택이라고 오해하는 '호명된' 대중에게 정보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미디어시대의 정보 분배 문제를 숙고해야할 때가 왔다.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대형포털 메인페이지에서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와 블로그를 떠올린다면 '정보 분배'라는 어려운 사안이 우리의 일상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지 금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마무리 지으며 내가 아끼는 블로그들이 오랫동안 운영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더욱 좋은 블로그들이 많이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 많은 블로그를 유랑하지 못하여 이 글의 토대가 되고있는 블로그에 대한 지식이 전체를 포괄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한계가 있으나, 어떠한 목적도 가지지 않고 개인적인 공간에 올라가는 글이기에 이러한 부담감은 덜어두도록 하겠다. 그러나 그 어떠한 양질의 글도 게시하지 않고 무작위로 취향에 맞는 글들만 올려온 나의 태도는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글로 정리해둔 바이니 이러한 점은 앞으로 자성하여 보완하도록 하겠다. 

  


*20140807 AM 4:25 
 어떠한 정리도 퇴고도 하지 않은, 생각의 흐름에 따라 작성한 글임을 밝힌다.

  1. 일반적으로 대형포털에서는 영양가있는 글을 올리는 활동적인 블로거에게 '사이버 상장'을 수여한다. 대표적으로 네이버의 파워블로거 선정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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