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20140811

언제나처럼 지루한 웹서핑을 하던 중에 우연히 (난 참 우연을 좋아한다) 나와 흡사한 취향을 가진 사람의 블로그에 들어가게 되었다. 카테고리이름도 비슷하고 - 특히 그 중 한 카테고리는 이름이 정확히 일치했고 - 글제목도 비슷하고 글을 올리는 취향도 비슷해서 '이 사람이 설마 내가 찾던 도플갱어였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문득 이런 순간이 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 기시감이 들어서 다시금 '난 참 우연을 좋아하는 구나' 싶었지만 누군가를 통해 나를 재발견하는 것은 즐거운 일임이 분명하다. 

 처음의 느낌과는 다르게 그 블로그의 글을 천천히 읽어보니 나와는 다른 면도 많이 있었다. 그러고보면 나를 포함한 보통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본인과의 유사점을 먼저 찾는 경향이 있는 듯 해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타인을 통해 나를 재발견함으로써 우리는 자기확신과 자기애를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이 '우연'이란 단어와 만나면 일상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재포장되어 낭만적인 일탈로 변모한다. 이런 일상적인 지루함에서 벗어나기위해 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반복적으로 우연을 좇게 되고, 그 후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차이점을 발견하면서 다시 좌절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서 유사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리학이나 철학에서 이런 성향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을 법도 싶은데 딱히 모르겠다. 기회가 되면 알 수 있겠지?   

 또 하나 발견한 점은 내가 가진 취향이 내 생각처럼 그렇게 독특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속한 집단이나 생활반경을 두고 보면 소수에 속할 수도 있지만, 다른 집단이나 다른 생활반경을 가진 사람들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평범한 취향일 수 있다. 인터넷은 이러한 시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수평적인 만남이 가능해지는 장소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진다. 내가 우연이라고 생각한 그 만남이 따지고보면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인터넷이기에 가능한 사건이라는 말이다. 




 대중매체에서 연일 '스마트폰 중독'이니 '디지털 치매'니 하는 디지털테크놀로지 문화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보도하고 있다. 이런 용어 자체가 무의미하지는 않다. 새로운 시대의 삶의 형태가 어느정도 부작용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논의가 균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쪽의 논점만을 보도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다. 인터넷 문화나 스마트폰 사용의 증가에는 부정적인 측면과 더불어 긍정적인 측면도 함께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었다고 말하기 전에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먼저 이야기해야한다.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이 동일한 시간동안 스마트폰을 이용한다고 쳤을 때 그 이용 목적과 이용 방법은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동과 청소년이 대상일 경우에는 이 논의는 더욱 극단적으로 보도된다. 하지만 디지털기기를 특정한 목적에 맞추어 능동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연령의 아동이라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무조건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치는 것은 아니기때문에 연장자나 보호자에 의해 강압적으로 단절시킬 수는 없다고 본다. 과거 텔레비전이 유행의 선도자이자 정보의 제공자 역할을 했듯이 현재는 디지털기기가 이를 대체하고 있다.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일 경우엔 디지털기기로부터 격리시킬 경우 오히려 또래집단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거나 심한 경우 배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학습을 위해 디지털기기를 사용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며 오히려 인터넷이나 컴퓨터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실행조차 불가능한 과제도 많다. 반면 성인의 경우엔 아동과 청소년에 비해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배우자의 제재도 미성년자 시기의 부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때문에 매체보도 제공자이자 담론의 생산자인 성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미성년자의 디지털기기 사용은 '중독'이나 '남용'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미성년자의 입장에서는 타당한 이유와 목적이 존재할 수 있기에 균형적인 담론의 생산이 중요한 것이다. 또한 디지털기기의 중독을 말할 때 전자파나 청색광처럼 신체적인 손상을 유발하는 경우를 논하고 싶다면, 제품의 생산과정에서 이를 차츰 보완해가는데에 주목해야한다. 이런 기술적인 문제는 이용자가 제품과 관계를 끊는 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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